
사람과 만나는 게 버거운 건 '나 혼자만 그런 줄' 알았다. 가족과의 식사 자리가 부담스럽고, 친구가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에 며칠씩 곱씹고, 직장에서 상사의 피드백 하나에 하루 종일 마음이 무너지는 일. 이런 일들이 반복되다 보면 어느 순간 '차라리 혼자가 편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솔직히 이게 정말 혼자가 좋아서가 아니라는 건 나도 안다. 그냥 관계에 지쳐서, 더 이상 상처받고 싶지 않아서 스스로를 보호하는 방법일 뿐이다. 함규정 저자의 《혼자가 편한 사람들을 위한 관계 연습》은 바로 그런 나를 위한 책이었다.
관계가 힘든 이유는 기술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처음에 책 제목을 봤을 때, '또 관계를 잘 맺는 방법을 알려준다는 자기계발서구나' 싶었다. 하지만 읽어보니 완전히 달랐다. 저자는 관계를 잘 맺는 비법이나 특별한 화술을 가르쳐주지 않는다. 대신 우리가 왜 관계에서 지치는지, 왜 가까운 사람일수록 더 상처받는지를 감정이라는 렌즈로 들여다본다.
저자는 LG, 삼성, 현대자동차 등의 기업에서 CEO와 임원들을 코칭해온 감정 코치이자 감성 지능 연구자다. 21년 경력, 2만 5천여 건의 상담 노하우를 바탕으로 이 책을 썼다고 하는데, 그 경험이 책 곳곳에서 묻어난다. 특히 인상 깊었던 건 관계를 '잘 하는 법'만이 아니라 '덜 지치는 법'을 알려준다는 점이다.
"그들은 관계에 쓸 에너지를 잘 유지합니다. 더 잘 하는 법뿐만 아니라 덜 지치는 법을 알고 있는 것이죠."
이 문장을 읽는 순간 무릎을 탁 쳤다. 나는 그동안 관계를 잘 해보려고 너무 애썼던 것 같다. 상대방 기분 맞추고, 말 조심하고, 분위기 살피느라 정작 내 감정은 뒤로 미뤘다. 그러다 결국 지쳐서 혼자가 편하다는 생각에 이르렀던 거다. 이 책은 그 지점을 정확히 짚어낸다.
감정을 정리해야 관계도 정리된다
저자가 강조하는 핵심 메시지는 간단하다. 감정이 풀려야 관계가 풀린다는 것. 우리는 흔히 감정을 드러내는 걸 미성숙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직장에서는 '프로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말이 덕목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저자는 말한다.
"진짜 무던함은 감정이 없는 게 아니라 감정을 현명하게 표현하는 힘에서 나옵니다."
회사에서 감정을 느끼는 건 이상한 게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감정이 살아 있는 사람, 건강한 감각을 지닌 사람이라는 증거다. 문제는 이 감정을 어떻게 다루느냐다. 책에서는 I 메시지 활용법, 감정 언어화 연습, 적절한 거리 두기 등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한다. 단순히 '감정을 표현하라'는 추상적인 조언이 아니라, 실제로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대화 예시까지 담겨 있어서 바로 써먹을 수 있었다.
다섯 개 장으로 풀어낸 관계의 모든 것
책은 총 다섯 개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은 인간관계에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법, 2장은 가족과의 관계에서 지치지 않는 법, 3장은 연애에서 감정의 독립성을 지키는 법, 4장은 직장에서 감정 소모를 줄이는 기술, 5장은 혼자 있는 시간을 자기 회복의 시간으로 바꾸는 방법을 다룬다.
개인적으로 가장 도움이 됐던 건 2장과 4장이다. 부모님과의 관계는 늘 내게 숙제였다. 효도해야 한다는 부담감, 그런데 자꾸 서운한 마음이 쌓이는 현실. 이 책은 부모님과의 관계도 나를 지키는 선에서 다시 설계할 수 있다고 말한다.
"관계는 어느 한쪽의 희생만으로는 오래가기 어렵습니다. 부모님과의 관계도 나를 지키는 선에서 다시 설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문장이 주는 위로가 컸다. 나는 그동안 효도라는 이름으로 스스로 무거운 짐을 어깨에 올리고 있었던 것 같다. 부모님을 사랑하지만, 동시에 나도 지켜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직장에서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나는 일보다 사람 때문에 더 힘들었다. 팀 분위기를 살피고, 상사 눈치를 보느라 정작 내 일에 집중하지 못했다. 4장에서는 이런 상황을 '감정 노동'과 '관계에서 오는 피로감'으로 구분해서 설명한다.
"잘 구분이 안 될 때는 스스로에게 물어보세요. 그냥 직장 내 관계 자체가 힘든 건지 아니면 나만 일방적으로 부서나 팀의 분위기 메이커를 책임지고 있어서 힘든 건지요."
이 질문 하나로 내가 왜 힘든지 명확해졌다. 나는 일방적으로 감정 노동을 하고 있었던 거다. 억지로 웃고, 맞추고, 감내하면서.
연애에서도, 가족에게도 필요한 건 '거리'였다
3장에서 다루는 연애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요즘은 끈끈한 연결 아래 각자의 삶을 지켜가는 방식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함께 있는 시간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함께 있는 방식이라는 거다.
"꼭 같은 공간에서 같은 생활 루틴을 공유해야만 관계가 두텁게 유지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각자의 삶을 존중하며 적절하게 연결을 시도하는 방식이 더 건강한 관계를 만드는 경우도 많습니다."
나는 연애를 하면서 상대방에게 맞추려고 너무 애썼던 것 같다. 내 삶도 상대의 삶도 똑같이 소중하다는 걸 이 책을 읽고 나서야 깨달았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서로를 옭아매지 않는 것, 그게 진짜 사랑이 아닐까.
혼자 있는 시간이 나를 회복시킨다
5장은 혼자 있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를 다룬다. 혼자가 편한 사람들은 혼자 있는 시간을 잘 활용할 줄 안다. 하지만 혼자가 편한 것과 쉬는 것은 다르다고 저자는 말한다.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고 가치 있게 활용하는 능력은 건강한 인간관계의 핵심 요소입니다."
혼자 시간을 보냈을 뿐인데 자기 자신과의 관계가 돈독해지고 타인과의 관계도 더욱 풍요로워진다는 것. 이 말이 처음엔 이해가 안 됐는데, 책을 읽다 보니 알 것 같다. 혼자 있을 때 나를 제대로 돌보고, 내 감정을 정리하고,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연습을 해야 한다는 거다.
"지금 이 자리에서 '오늘의 나도 괜찮다'고 말할 수 있어야 앞으로도 스스로를 믿고 나아갈 수 있습니다."
나는 그동안 나에게 너무 엄격했다. '왜 그랬지?', '난 왜 이렇게 멍청할까?' 같은 자기 비난이 자동화되어 있었다. 이 책은 그런 무의식적인 습관을 바꾸려면 새로운 스크립트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실수했을 때 스스로에게 '괜찮아, 누구나 실수할 수 있어'라고 말해주는 연습. 작은 것 같지만 이게 정말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
책 전체를 관통하는 메시지는 하나다. 완벽하게 잘 지내려는 부담은 내려놓아도 된다는 것. 형제자매와 그저 그런 사이여도 괜찮고, 직장에서 모든 사람과 친할 필요도 없고, 연애에서도 24시간 함께 있지 않아도 된다는 것.
"불완전함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데 꽤 큰 용기가 필요할 뿐이죠."
이 문장이 주는 위로가 컸다. 나만 유독 부족해 보이고 남들보다 뒤처진 것 같을 때, 우리는 본능처럼 자신을 숨기거나 몰아붙이게 된다. 하지만 진짜 변화는 완벽한 모습이 아니라 지금의 나를 잠시 멈춰 바라보는 데서 시작한다는 것.
누가 읽으면 좋을까
이 책은 혼자가 편하지만 관계에서는 늘 지쳐 있는 사람들에게 딱이다. 가족과 대화가 버겁고, 친구의 말 한마디에 상처받고, 직장에서 사람 때문에 힘든 사람이라면 꼭 읽어봤으면 좋겠다. 특히 다음과 같은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부모님과의 관계에서 늘 서운함이 쌓이는 사람, 연애에서 자꾸 상처받고 지쳐가는 사람, 직장에서 일보다 사람이 더 힘든 사람, 혼자 있는 게 편하지만 외롭다고 느끼는 사람. 이 책은 그들에게 감정을 정리하고 건강한 경계를 세우는 방법을 알려준다. 단순히 '좋은 관계를 맺어라'는 추상적인 조언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어떻게 말하고 행동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실전 가이드다.
결론: 힘을 빼야 관계도 편해진다
책을 다 읽고 나니 든 생각은, '아, 이 책을 진작 만났더라면' 이었다. 그동안 관계에서 너무 애쓰느라 정작 나를 잃어버렸던 것 같다. 이 책은 관계를 회복하는 힘이 특별한 기술이나 거창한 결단이 아니라 작은 습관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감정을 언어화하고, 적절한 거리를 두고, 혼자인 시간을 자기 회복의 기회로 활용하는 법. 이런 작은 연습들이 쌓이면 관계의 근육이 생긴다. 그러면 관계에 지쳐 혼자가 편했던 사람도 다시 사람과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혼자가 편한 사람들을 위한 관계 연습》은 혼자가 익숙한 사람에게 다시 사람과 함께할 용기와 여유를 주는 책이다. 감정은 관계를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관계를 다시 세울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열쇠다. 이 책은 그 열쇠를 어떻게 활용할지를 친절하게 안내하는 든든한 안내자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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