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년 연말이 되면 서점가에는 '트렌드' 책들이 쏟아진다. 그중에서도 『트렌드 코리아』 시리즈는 단순한 예측서를 넘어, 한국 사회를 관통하는 변화의 맥을 짚어내는 나침반 같은 존재였다. 2026년 버전을 펼쳐든 순간, 첫 페이지부터 느껴지는 묵직한 질문 하나. "AI 대전환의 시대,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이 책은 그 답을 찾아가는 여정이자, 동시에 우리 스스로에게 던지는 근본적인 물음이다.
저자들이 2026년을 설명하기 위해 꺼내든 메타포는 '켄타우로스'다. 상체는 인간, 하체는 말. 이 신화 속 존재는 AI 시대를 살아갈 우리의 모습을 정확히 포착한다. 인간 고유의 사유 능력과 AI의 압도적인 계산력이 결합된 하이브리드 존재. 이것이 바로 2026년을 살아갈 우리의 초상이다. 책은 명확히 선언한다. "AI 시대의 진정한 승자는 가장 빠르고 강력한 기계를 가진 자가 아니라, 그 기계 위에서 가장 깊이 사유하고 현명한 질문을 던지는 인간이 될 것"이라고.
열 개의 키워드로 읽는 2026년 대한민국
이 책이 제시하는 2026년 10대 트렌드 키워드는 단순한 예측의 나열이 아니다. AI라는 거대한 파도가 몰아치는 가운데, 그것이 만들어내는 직접적 변화(작용)와 그에 대응하는 인간적 반응(반작용)을 정교하게 직조해낸 변증법적 구조물이다.
첫 번째 키워드 '휴먼인더루프(Human-in-the-loop)'는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메시지다. AI가 아무리 똑똑해져도, 최종 판단과 윤리적 결정에는 반드시 인간이 개입해야 한다는 것. 이는 단순한 기술 철학을 넘어 시대정신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고 저자들은 강조한다. AI의 결정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질문하고 수정하는 과정. 그것이 바로 우리가 인간이기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마지막 약속이라는 표현이 인상적이다.
'필코노미(Feelconomy)'는 감정이 소비의 핵심 동인으로 부상하는 현상을 포착한다. "오늘 기분이 안 좋아서 빵을 샀어"라는 문장에서 시작되는 이 챕터는, 필요나 의미를 넘어 '기분'이 구매를 결정하는 시대를 설명한다. 작은 학용품부터 주거 시장까지, 감정은 이제 경제를 움직이는 새로운 동력이 됐다. 냉철한 합리성보다 순간의 감정이 더 솔직한 선택을 이끌어내는 시대, 그것이 2026년이다.
'제로클릭(Zero-click)'은 AI가 가져올 편의성의 극단을 보여준다. 검색어를 입력하고, 링크를 클릭하고, 정보를 찾아 헤매던 시대는 끝났다. 이제는 친구에게 말하듯 AI에게 물어보면 된다. 클릭 한 번 없이도 원하는 결과를 얻는 시대. 편리함의 끝에서 우리가 잃게 될 것은 무엇일까 하는 질문도 함께 던져진다.
'레디코어(Ready-core)'는 불확실한 미래를 대비하는 신세대의 생존 전략이다. 몇 년 전 유행했던 '갓생'이 하루하루를 뿌듯하게 채우는 것이었다면, 레디코어는 미래를 현재로 소환해 미리 경험하고 준비하는 것이다. 취업 전 직무 체험, 결혼 전 동거, 은퇴 전 시뮬레이션. 준비된 상태가 삶의 핵심 가치가 된 시대의 초상이다.
'AX조직(AI Transformation)'은 조직 구조의 근본적 변화를 다룬다. 크로스 포지션, 제로 디스턴스, 울트라 플랫, 잼세션. 이런 개념들은 단순히 조직도를 바꾸는 게 아니라, 구성원 개개인의 사고방식을 바꾸라는 요구다. 앨빈 토플러의 말처럼, 21세기의 진정한 문맹자는 학습하고 폐기하고 재학습할 수 없는 사람이다.
'픽셀라이프(Pixelated Life)'는 거대 서사의 종말을 선언한다. 유튜브가 '인기 급상승 동영상'을 폐지한 것은 상징적이다. 더 이상 모두가 공유하는 거대한 트렌드는 없다. 탕후루와 두바이 초콜릿이 왔다가 사라지고, 새로운 디저트가 소셜미디어를 뒤덮는다. 무수히 많은 마이크로 트렌드가 끊임없이 생성되고 소멸하는, 픽셀처럼 파편화된 삶의 풍경이다.
'프라이스 디코딩(Price Decoding)'은 소비자와 브랜드 관계의 근본적 전환을 보여준다. 과거의 가격표가 '마침표'였다면, 이제는 '물음표'가 됐다. "왜 100만 원입니까?" "이 가격을 정당화할 수 있습니까?" 소비자들은 더 이상 브랜드의 일방적 선언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가격은 브랜드와 소비자가 함께 검증하고 합의해가는 대화의 시작점이 됐다.
'건강지능(Health Intelligence)'은 건강이 더 이상 의료의 영역이 아니라 라이프스타일 그 자체가 됐음을 보여준다. 모든 비즈니스가 건강 비즈니스가 되는 시대. 가전, 주거, 패션, 여행, 금융까지 모든 영역에서 건강 요소를 어떻게 담아낼지 고민해야 한다. 달콤한 시리얼 대신 고단백 저당 그래놀라가 식탁에 오르는 것은 작은 변화의 신호탄이다.
'1.5가구'는 혼자인 동시에 함께인, 새로운 관계 맺음의 방식을 포착한다. 혈연으로 묶인 가족도, 완벽히 독립된 1인도 아닌 중간 지대. 자율성과 연결감을 동시에 추구하는 현대인들의 균형 감각이 만들어낸 새로운 사회적 수식이다.
마지막 '근본이즘(Fundamentalism)'은 가장 아이러니한 키워드다. 디지털과 AI가 세상을 호령하는 지금, 사람들은 오히려 박물관으로 향한다.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짜가 넘쳐나는 시대에, 진본을 직접 보고 싶다는 열망. 이것은 인간으로서의 근본을 찾으려는 반작용이자, 혼돈의 시대를 견디는 버팀목이다.
작용과 반작용, 그 치열한 변증법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AI를 단순히 찬양하거나 경계하는 이분법을 넘어선다는 점이다. 저자들은 명확히 말한다. AI의 작용이 있으면 반드시 인간적 반작용이 있다고. 제로클릭의 편리함이 커질수록 근본에 대한 갈망도 커진다. 픽셀라이프의 파편화가 심해질수록 연결에 대한 욕구도 강해진다. 이것이 바로 변증법적 질서다.
책 곳곳에서 저자들은 "결국 사람이다"라는 메시지를 반복한다. 이세돌 9단이 알파고를 상대로 거둔 1승, 그 제78수를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AI 시대에도 우리는 자기만의 수, 가장 나다운 수를 찾아야 한다. 기계가 아무리 똑똑해져도, 가장 깊이 사유하고 가장 현명한 질문을 던지는 것은 여전히 인간의 몫이다.
배는 항구에 있을 때 가장 안전하지만
서문에 나오는 문장이 울림으로 남는다. "배는 항구에 정박해 있을 때가 가장 안전하지만, 그것이 배의 본질은 아니다." 2026년의 바다는 거세고 예측 불가능하다. 관세전쟁, AI의 위협, 끝없는 전쟁의 소용돌이. 그럼에도 한국 경제는 K뷰티와 K콘텐츠를 앞세워 항해를 이어가고 있다.
이 책은 단순한 트렌드 예측서가 아니다. 거센 풍랑 속에서 방향타를 잡는 법, 어디에 닻을 내려야 하는지 알려주는 항해 지침서다. 10대 키워드 하나하나가 우리가 주목해야 할 별자리이고, 그것들을 연결하면 2026년을 향한 항로가 그려진다.
마치며: 켄타우로스의 시대를 살아가는 법
이 책을 덮으며 드는 생각은, AI 시대는 결국 더 인간다운 시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기계가 대신할 수 없는 것, 알고리즘이 포착할 수 없는 것, 데이터로 환원되지 않는 것. 그것이 바로 인간의 영역이고, 우리가 지켜야 할 성채다.
켄타우로스는 반인반마다. 하지만 그 조합이 괴물을 만드는 게 아니라 새로운 가능성을 여는 것처럼, AI와 인간의 결합도 우리를 더 나은 존재로 만들 수 있다. 단, 그러기 위해선 질문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AI에게 맹목적으로 의존하지 말고, 끊임없이 묻고 개입하고 수정해야 한다. 그것이 휴먼인더루프의 진정한 의미다.
2026년, 우리는 모두 켄타우로스가 된다. 문제는 그 위에 올라탄 인간이 얼마나 깊이 사유할 수 있느냐다. 『트렌드 코리아 2026』은 그 사유를 위한 최소한의 공간이자, 항해를 위한 든든한 나침반이다. 변화의 속도가 두렵다면, 이 책과 함께 2026년의 바다로 항해를 떠나보는 건 어떨까. 배는 항구에 있을 때 가장 안전하지만, 그것이 배의 본질은 아니니까.
오늘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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