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솔직히 말하면, 스트레스 관리 책이라면 이미 손이 잘 안 간다. '긍정적으로 생각하세요', '마음챙김을 하세요', '번아웃을 조심하세요'. 이런 말들이 너무 익숙해진 탓이다. 서점에 가면 비슷한 제목의 책들이 줄지어 꽂혀 있고, 읽고 나면 '맞는 말이긴 한데…'라는 미지근한 감상만 남기 일쑤다. 그래서 『업시프트』를 처음 집어 들었을 때도 반신반의했다. 그런데 읽기 시작하고 나서는 생각이 달라졌다.
저자 벤 라말링검은 가자 지구, 수단, 우크라이나 분쟁 지역, 쓰나미 현장, 팬데믹 최전선을 일터로 삼아온 사람이다. UN, 적십자사, 국경없는의사회와 함께 20여 년을 일했다. 그는 비극의 현장에서 이상한 광경을 반복해서 목격했다. 누군가는 극한의 압박 속에서 무너지는데, 누군가는 오히려 더 창의적이고, 더 집중하고, 더 많은 걸 해낸다. 그 차이가 무엇인지 묻는 데서 이 책이 시작된다.
'좋은 스트레스'는 진짜로 존재하는가
책 초반에 심리학자들이 말하는 '유스트레스(eustress)' 개념이 나온다. 스트레스가 너무 많으면 과부하 상태가 되고, 너무 적으면 무기력과 지루함에 빠진다. 그 사이 어딘가에 성과를 극대화하는 최적 구간이 있다는 이야기다. 처음엔 그냥 일반적인 이야기로 들렸다. '스트레스도 나쁜 게 아니에요' 하는 류의 위안. 그런데 저자가 이걸 설명하는 방식이 달랐다. 이론으로 설명하는 게 아니라 재난 현장에서 직접 관찰한 사람들의 이야기로 보여준다. 우크라이나에서, 수단에서, 인도양 쓰나미 현장에서, 그는 극한의 압박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더 나은 성과를 낸 이들을 관찰했다. 그리고 이들에게는 공통된 세 가지 요소가 있었다.
사고방식, 독창성, 목적의식. 이 세 가지가 책이 말하는 핵심이다.
세 가지 핵심
사고방식부터 보자. 업시프터들은 어려운 상황을 위협이 아니라 도전으로 받아들인다.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건 누구나 안다. 저자는 이게 타고난 성품의 차이가 아니라 훈련 가능한 습관이라고 말한다. 책에 '스트레스 예방 접종'이라는 개념이 나오는데, 군 특수부대나 외과 전문의 교육처럼 미리 적당한 스트레스에 반복 노출되다 보면 실제 위기 앞에서 흔들림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신경과학과 실제 훈련 사례를 근거로 한 이야기여서 막연한 긍정 권유와는 달랐다.
독창성 부분도 신선했다. 창의성이란 특별한 사람들의 타고난 자질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저자는 압박 속에서 독창적이 될 수 있는지는 개인의 특성만이 아니라 환경, 즉 주변에서 독창성을 가치 있게 보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한다. 좌뇌형, 우뇌형 식의 고정된 유형론을 정면으로 반박하면서, 올바른 환경이 주어지면 누구든 압박감 속에서 창의적으로 움직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개인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팀을 운영하는 사람이라면 더 직접적으로 와닿을 대목이다.
목적의식은 세 요소 중 가장 인상 깊었다. 책에 '피의 금요일', 응급 상황이 몰아치는 금요일에도 흔들리지 않는 한 병원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 병원이 다른 병원보다 나은 성과를 낸 이유를 분석해보면, '왜 이 일을 하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분명한 답이 조직 전체에 자리 잡고 있었다는 것이다. 위기 앞에서 사람들의 반응은 다 다른데, 의미와 목적이 뿌리내린 사람은 같은 상황에서도 버티는 방식이 달랐다.
나는 어떤 유형인가
책의 2부는 스트레스를 성과로 전환한 사람들을 여섯 가지 유형으로 나눠 설명한다. 도전자, 기술자, 결합자, 연결자, 입증자, 지휘자. 처음엔 MBTI식 유형 분류 같아서 경계했는데, 읽다 보니 각 유형이 성격 분류가 아니라 스트레스 상황에서 문제에 접근하는 방식의 차이라는 걸 알게 됐다.
도전자는 당연하게 여겨지는 규칙에 의문을 품는 사람이다. 이케아 창립자 잉그바르 캄프라드가 대표 사례로 나온다. 그는 손에 망치가 있다고 모든 걸 두드리지 않았다. 문제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먼저 물었다. 주어진 선택지 안에서만 답을 찾으면 잘못된 문제를 더 열심히 푸는 상황이 된다는 것이다.
기술자는 한 가지 문제와 사랑에 빠지는 사람이다. 집요하게 비틀고 부숴보고 재조립한다. 만 번의 실험 끝에 필라멘트 전구를 만든 에디슨이 이 유형이다. 단순한 끈기가 아니라 실패를 데이터로 보는 시각이 핵심이다.
결합자는 서로 다른 분야를 이어붙이는 사람이다. 새를 관찰하고 자전거 정비 기술과 결합해 비행기를 만든 라이트 형제가 이 유형이다. 책에는 아인슈타인이 음악을 즐겼다는 이야기도 나오는데, 그 여백이 물리학적 사유에 깊이를 더했다고 저자는 본다.
연결자는 계층이나 분야에 상관없이 다양한 사람들 사이를 이어주는 사람이다. 단순히 인맥이 넓은 게 아니라 사회적 틈을 메운다. 난민을 위한 행진에 1만 명 이상을 모은 에레이라의 이야기가 사례로 나온다. 그는 지시한 게 아니라 연결했다.
입증자는 원인과 결과를 수치로 확인하려는 사람이다. 나이팅게일이 대표적이다. 그는 병원 내 사망 원인을 세세히 기록하고 분석해, 비위생적 환경이 전투 부상보다 더 많은 병사를 죽이고 있다는 것을 데이터로 증명했다. 감이 아니라 근거로 설득했다.
지휘자는 서로 다른 기술과 개성을 지닌 사람들을 공동의 목표로 묶는 사람이다. 인도주의 구호 분야의 랜돌프 켄트가 이 유형의 사례로 나온다. 그가 사람들을 이끈 방식은 통제가 아니라 질문하고 경청하고 조율하는 것이었다.
여섯 유형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나는 어디에 가깝지?'를 생각하게 됐다. 도전자, 기술자 성향을 가지고 있으며, 사회생활을 거듭할 수록 지휘자의 유형도 함께 성장해나가고 있는 단계로 보인다. 어느 하나에 종속되어 있기보다는 '육각형 인재'와 같이 두루 갖춰야만 이 시대에 적합한 인물이 되지 않을까? 싶다.
다른 스트레스 관리서와 다른 점
대부분의 자기계발서가 '스트레스를 줄여라'고 말할 때, 이 책은 '스트레스를 다루는 법을 익혀라'고 말한다.
스트레스를 줄이는 전략은 기본적으로 회피의 논리다. 자극을 줄이고, 쉬고, 거리를 두는 것. 번아웃 예방을 위한 회복이 필요한 건 맞다. 하지만 스트레스를 완전히 제거할 수 있는 사람은 없고, 의미 있는 일을 하는 사람일수록 더욱 그렇다. 그렇다면 피하는 것보다 다루는 법을 익히는 편이 낫다.
저자가 일해온 현장을 생각하면 이 논리가 더 분명해진다. 가자 지구에서 구호 활동을 하는 사람에게 '스트레스 줄이세요'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건 사실상 '그 일을 그만두세요'와 같다. 이 책은 그런 현장에서 실제로 스트레스를 다뤄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정리한 것이다. 그래서 조언이 공허하지 않다.
한 가지 더. 이 책은 개인의 변화만 다루지 않는다. 독창성은 조직이 그것을 가치 있게 볼 때 더 잘 발휘된다는 내용처럼, 개인이 업시프트 마인드를 가져도 조직이 억압하면 발현되기 어렵다고 말한다. 팀을 이끄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유형을 파악하는 것만큼이나, 팀원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움직일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도 역할이라는 이야기다.
아쉬운 점
아쉬운 부분도 있다. 1부에서 2부로 넘어가는 전환이 조금 느슨하다. 이론 설명이 끝나고 유형 분류로 넘어가는 사이에 독자가 흐름을 잃을 수 있다. 여섯 유형이 각각 독립적으로 소개되는 것도 아쉬웠다. 현실에서는 한 사람이 여러 유형의 특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고, 팀 안에서 유형들이 부딪칠 때 어떻게 조율하느냐는 실용적인 질문인데, 이 부분은 얕게 다뤄졌다.
그래도 이 책을 읽고 나서 스트레스를 보는 시선이 달라진 건 사실이다. 마감이 몰려오거나 예상치 못한 문제가 터졌을 때, 이제는 그 상황을 조금 다르게 본다. 도망가야 할 상황이 아니라, 내 안의 무언가를 꺼낼 수 있는 순간으로.
누가 읽으면 좋을까
업무에서 반복되는 압박감에 시달리는 직장인에게 맞는 책이다. '힘내세요'가 아니라, 그 압박을 실제로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를 구체적인 사례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팀을 이끄는 리더라면 여섯 유형 분류를 통해 팀원 각각의 강점을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반대로, 스트레스를 이미 잘 다루고 있고 심리학 이론을 깊이 원하는 독자라면 다소 얕게 느껴질 수 있다. 학술서가 아니라 현장 관찰에 기반한 실용서다. 압력 없이 다이아몬드는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말을 누구나 들어봤을 것이다. 『업시프트』는 그 말을 격언으로 두지 않고, 실제로 압력 속에서 다이아몬드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여주려 한다. 그리고 꽤 성공적으로 해내고 있다.
오늘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책으로 여는 세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 AI 에이전트를 만들기 위한 기본 (0) | 2026.03.01 |
|---|---|
| Gemini CLI, Cursor AI의 대체재로 충분한가? (0) | 2026.02.18 |
| 부의 미래를 여는 열쇠, AI와 비즈니스의 본질을 말하다 (0) | 2026.02.11 |
| Cursor AI 를 앞서가는 클로드 코드 톺아보기 (2) | 2026.02.02 |
| 혼자가 편하지만, 관계가 필요할 때 (2) | 2026.01.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