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기력의 늪에서 빠져나오는 법
월요일 아침, 알람이 울린다. 손은 자동으로 스누즈 버튼을 누르고, 머릿속으로는 오늘 해야 할 일들이 주르륵 떠오른다. 밀린 업무, 운동 계획, 정리해야 할 집안일, 연락해야 할 사람들... 해야 할 일은 산더미인데 몸은 침대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조금만 더, 5분만 더'를 반복하다 결국 급하게 씻고 나가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리고 또다시 다짐한다. '내일은 달라질 거야.' 하지만 내일이 와도 달라지는 건 없다.
정신과 전문의 이광민 원장의 『할 일은 많지만 아직도 누워 있는 당신에게』를 처음 집어 든 이유도 바로 이것이었다. 제목부터 마치 내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으니까. MBC 〈나 혼자 산다〉와 JTBC 〈이혼숙려캠프〉 등에 출연해 많은 이들에게 공감과 위로를 건넸던 저자가 이번에는 우리 시대의 보편적 증상인 '무기력'에 대해 이야기한다.
게으른 게 아니라 완벽하고 싶은 것
이 책에서 가장 놀라웠던 지적은 우리가 무기력한 이유가 '게을러서'가 아니라는 점이다. 저자는 오히려 "누구보다 잘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를 '게으른 완벽주의자'라는 개념으로 설명하는데, 이 대목을 읽으면서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생각해보면 그랬다. 나는 운동을 시작하려고 마음먹을 때마다 헬스장도 알아보고, PT도 알아보고, 운동복도 구매하고... 완벽한 계획을 세우느라 정작 시작은 하지 못했다. 책도 마찬가지였다. 독서 목록을 정리하고, 독서 노트를 준비하고, 완벽한 환경을 만들려다 보니 정작 책을 펼치는 일은 미뤄졌다. 완벽하게 하고 싶은 욕심이 오히려 시작 자체를 막고 있었던 것이다.
저자는 이런 완벽주의가 안정주의와도 통한다고 설명한다. 완벽해지려면 모든 것이 통제 가능하고 예측 가능해야 하는데, 인생이라는 게 그렇지 않지 않은가. 작은 돌발 변수만으로도 우리는 쉽게 휘청인다. 그래서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학습된 무기력을 극복하는 법
책에서 소개하는 '학습된 무기력' 실험은 충격적이면서도 우리의 현실을 정확히 보여준다. 전기 충격을 받는 개가 처음에는 피하려 발버둥 치다가, 어차피 피할 수 없다는 것을 학습하고 나면 난간을 넘으면 피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그냥 포기해버린다는 실험이다.
더 놀라운 것은 이 무기력을 극복하는 방법이다. 연구자들이 찾아낸 유일한 해결책은 '억지로 옮기기'였다. 개를 강제로 난간 밖으로 옮기는 것이다. 한 번으로는 안 되고, 두 번, 세 번... 계속 반복하고 나서야 개는 다시 스스로 난간을 뛰어넘기 시작했다.
이 실험이 시사하는 바는 명확하다. 무기력을 극복하려면 불편하고 귀찮고 힘들더라도 어떻게든 억지로라도 움직여야 한다는 것. 하지만 실험 속 개는 연구진이 옮겨줄 수 있었지만, 우리는 스스로 움직여야 한다. 이게 바로 문제다.
빅 스텝이 아닌 스몰 스텝으로
저자가 강조하는 핵심 솔루션은 바로 '아주 작은 루틴'이다. 그는 단호하게 말한다. "루틴은 거창하게 시작할수록 반드시 실패한다."
많은 사람들이 새해 계획을 세울 때 하는 실수가 바로 이것이다. '매일 1시간 운동하기', '책 한 달에 10권 읽기', '영어 공부 매일 2시간'... 이런 빅 스텝 목표들은 컨디션이 좋을 때는 가능할지 몰라도, 무기력한 상태에서는 한 계단조차 오르기 힘들다.
저자가 제안하는 것은 스몰 스텝이다. 운동을 예로 들면, 처음부터 헬스장에 가서 강도 높은 운동을 하는 게 아니라, 집 근처를 산책하는 것부터 시작하라는 것이다. 몸에 열감이 느껴지고 약간 땀이 날 정도로만 움직이면 된다. 책도 마찬가지다. 하루 한 챕터가 아니라, 단 한 페이지라도 괜찮다. 중요한 것은 거창함이 아니라 꾸준함이다.
특히 PT에 대한 지적이 인상적이었다. 많은 코치들이 처음부터 회원을 몰아붙이는데, 이는 눈에 보이는 성과를 빨리 내기 위함이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금방 포기하게 만든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단기간의 성과가 아니라 지속 가능한 변화다. 그러니 운동의 목표는 가시적 결과가 아니라 꾸준함이 되어야 한다는 저자의 조언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생활 패턴이 무너지면 마음도 무너진다
정신과 의사가 왜 루틴을 강조하는지, 책을 읽으면서 이해가 됐다. 저자는 실제 진료 현장에서 생활 리듬이 무너져 우울증이나 번아웃에 시달리는 환자들을 자주 만난다고 한다. 그럴 때 가장 먼저 점검하는 것이 수면, 식사, 신체 활동 등 일상의 패턴이다.
이는 내 경험과도 일치한다. 프로젝트가 바빠서 잠을 제대로 못 자고, 끼니를 대충 때우고, 운동은커녕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시기가 있었다. 그때는 정말 모든 게 힘들었다. 사소한 일에도 짜증이 났고, 집중력은 떨어졌으며, 무엇보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몸이 무너지니 마음도 함께 무너진 것이다.
저자는 돌발적인 환경 요인이 있더라도 다시금 하루의 일상을 고유한 패턴으로 다잡으려는 노력이 몸과 마음을 적절히 돌아가게 하는 기본이라고 강조한다. 루틴이 필요한 이유는 그것이 나를 지켜주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규칙적으로 먹고, 자고, 움직이는 것은 나를 돌보는 가장 기본적인 방식이다.
상처받지 않는 인간관계 루틴
책의 3장에서는 인간관계에 대해 다룬다. 무기력이 개인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받는 상처가 우리를 더욱 무기력하게 만들 수 있다.
저자는 인간관계를 RPG 게임에 비유한다. 처음에는 가벼운 몬스터를 잡으면서 경험치를 쌓고, 레벨이 올라가면 더 어려운 몬스터를 상대할 수 있는 것처럼, 인간관계도 처음에는 부담 없는 관계에서 시작해 경험을 쌓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사람을 대하는 능력, 상처를 피하는 능력, 나를 보호하는 능력이 늘어난다.
이는 매우 현실적인 조언이다. 우리는 종종 모든 관계에서 완벽하게 대처하려 하지만, 그게 가능할 리 없다. 손에 굳은살이 생기듯 자연스럽게 인간관계에서의 맷집이 생긴다는 표현이 적절하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사람들과 부딪혀 나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비우고 다시 채우는 마음 루틴
마지막 장에서는 마음을 다루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한다. 특히 명상과 휴식에 대한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저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휴식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현대인들은 휴식조차 생산적으로 하려 한다. 쉬는 시간에도 자기계발서를 읽거나, 유튜브로 새로운 것을 배우거나, SNS를 끊임없이 확인한다. 진짜 의미의 휴식, 즉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비워두는 시간을 갖지 못한다. 저자는 또한 도망치는 것도 괜찮다고 말한다. 우리 사회는 버티고 견디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지만, 때로는 그 상황에서 벗어나는 것이 나를 지키는 방법일 수 있다. 이는 포기가 아니라 전략적 후퇴다.
1%라도 달라지자
이 책을 읽고 나서 실제로 적용해본 것들이 있다. 거창한 목표 대신 정말 작은 것부터 시작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침대 정리하기, 하루 10분 스트레칭하기, 저녁에 5분 일기 쓰기. 이런 사소한 것들이었다. 놀라운 것은 이런 작은 루틴들이 실제로 내 하루를 바꾸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침대를 정리하고 나면 아침이 조금 더 개운했고, 스트레칭을 하고 나면 몸이 가벼워진 느낌이었다. 일기를 쓰면서 하루를 정리하니 마음도 차분해졌다. 이 작은 성취감들이 모여 다음 날 다시 해보고 싶다는 동력이 되었다. 물론 여전히 침대에서 일어나기 힘든 날도 있고,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도 있다. 하지만 예전과 다른 점은 그럴 때 너무 자책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오늘 못했으면 내일 하면 된다. 중요한 것은 완벽함이 아니라 방향이니까.
지금 무기력한 당신에게
『할 일은 많지만 아직도 누워 있는 당신에게』는 단순한 자기계발서가 아니다. 정신과 전문의로서 수많은 환자들을 만나온 저자의 임상 경험과 심리학, 의학 연구를 바탕으로 한 실용적인 처방전이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현실적이라는 것이다. '의지를 불태우세요', '할 수 있습니다' 같은 공허한 구호 대신, 왜 우리가 무기력해지는지 과학적으로 설명하고, 작고 구체적인 실천 방법을 제시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실패해도 괜찮다고, 다시 시작하면 된다고 말한다.
지금 침대에 누워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 이 책을 권한다. 당신이 게으른 게 아니라는 것, 무기력은 극복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거창한 변화가 아니라 아주 작은 루틴부터 시작하면 된다는 것을 이 책이 알려줄 것이다. 오늘 할 일을 또 내일로 미뤘다면, 그래도 괜찮다. 내일은 침대를 정리하는 것부터 시작해보자.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첫걸음이다. 1%라도 달라지면, 그것이 쌓여 언젠가는 당신이 원하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오늘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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